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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문화 백서 발간, 디자인이 기록을 완성합니다

기록을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

문화 기관의 정체성이 지면에 스며드는 순간들

문화 백서 디자인

6년간의 활동을 정리한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공연과 전시, 지역 프로그램까지 부서별로 흩어진 문서와 사진이 폴더 가득이었어요. 이걸 400페이지에 가까운 한 권으로 엮어야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기록의 영역입니다. 연도별로 나누고, 성과를 정성적인 부분과 정량적인 부분으로 구분하고, 부서마다 다른 문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일이요. 중복된 사례는 통합하고, 수치는 담당자와 하나하나 검증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원고의 서사를 함께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6년의 활동을 시간순으로만 나열하면 자료의 나열에 그치거든요. 어떤 흐름으로 읽히게 할지, 어떤 성과를 앞세울지를 정해야 비로소 한 권의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확한 자료집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문화재단의 문화 백서 발간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해요. 기록이 기억으로 남으려면 디자인이 함께 작동해야 하거든요.

색으로 정체성을 세우다

문화 기관은 이미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포스터부터 공간의 분위기까지, 그 색이 기관의 인상을 만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이 문화 백서의 디자인은 재단의 시그니처 색상에서 출발했습니다. 표지와 내지에 같은 색 계열을 적용하고, 여러 색을 조합할 때는 비비드한 톤으로 생동감을 살렸어요. 차분한 단색보다 문화 기관의 성격에 어울리는 선택이었습니다.

색이 많아지면 정리가 필요합니다. 어떤 색을 어느 지면에 둘지 규칙을 정해두어야 흩어지지 않거든요. 표지에서 시작한 색이 내지까지 같은 규칙으로 이어질 때, 책을 넘기는 동안에도 정체성이 끊기지 않고 전해집니다.

이 규칙은 챕터를 구분하는 역할도 합니다. 분야마다 다른 색을 배정해두면 독자는 지금 어느 영역을 읽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거든요. 색이 정보의 안내판이 되는 셈입니다.

문 하나에 담은 메시지

표지는 이 백서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오간 지면이었습니다. 부제가 모두의 예술이 찬란한 문화로였는데, 그 문장을 어떻게 한 장면으로 압축할지가 관건이었어요.
결국 문화로 들어가는 문을 표지에 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의 중앙을 타공했어요. 구멍 너머로 재단의 상징 색이 비치도록 만든 겁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안쪽의 색이 살짝 드러나는 구조죠.

여기에 홀로그램박을 더했습니다. 찬란하다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거든요. 빛의 각도에 따라 표지가 반짝이면서, 부제의 한 단어가 실제 감각으로 전해집니다.

타공과 홀로그램박은 각각 따로 쓰이면 평범한 후가공입니다. 하지만 문이라는 형태와 만나면서 서로를 보완하게 됐어요. 구멍 너머로 보이는 색과 표면에서 반짝이는 빛이 함께 작동하면서, 표지를 보는 순간 이 문화 백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전해집니다.

부제의 단어 하나가 표지 컨셉이 되고, 그 컨셉이 다시 후가공 선택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디자인이 메시지를 이어받아 완성하는 과정이었어요.

문화 백서 발간

400페이지를 견디게 하는 장치들

분량이 많은 백서는 읽는 사람의 피로를 고려해야 합니다. 400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밀도로 채우면 아무도 끝까지 넘기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미지와 인포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텍스트만 이어지는 지면과 시각 요소가 함께 놓인 지면은 읽는 부담이 완전히 다릅니다. 복잡한 수치일수록 그림으로 풀어낼 때 오히려 정확하게 전달되고요.

지면의 리듬도 신경 썼습니다. 밀도가 높은 페이지 다음에는 여백이 넉넉한 페이지를 두는 식이에요. 계속 빽빽하면 눈이 지치고, 계속 여유롭기만 하면 분량만 늘어나거든요. 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긴 호흡의 책자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간지에도 장치를 넣었습니다. 앞뒤 페이지의 가로 길이를 다르게 만들어, 책을 넘기다 보면 길이가 다른 종이가 나타나도록 했어요. 별도의 설명 없이도 챕터가 바뀌었다는 걸 손으로 느끼게 되는 구조입니다.

제본과 용지도 함께 고려했습니다. 무선날개제본으로 정돈된 인상을 주고, 날개 부분에는 정보를 더 담았어요. 표지는 랑데부 240g으로 단단하게, 내지는 105g으로 넘기기 편한 질감을 유지했습니다.

디자인이 기록을 완성한다는 것

이 프로젝트를 마치며 다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기획이 기록이라면, 디자인은 그 기록을 기억의 형태로 바꾸는 일이라는 점이요.
같은 6년의 활동이라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남는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확하게 정리된 자료집으로 남을 수도 있고, 기관의 색과 온도가 함께 전해지는 한 권으로 남을 수도 있어요.

문화와 예술 분야의 문화 백서에서 디자인이 특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관들이 하는 일 자체가 감각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 감각이 기록에도 담겨야 비로소 기관을 제대로 보여주는 한 권이 됩니다.

그래서 기관의 문화 백서 발간은 자료를 받는 순간부터 디자인을 함께 생각합니다. 어떤 색을 쓸지, 어떤 형태로 만들지가 원고의 방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에요. 기록과 디자인이 따로 진행되면 결국 어느 한쪽이 겉돌게 됩니다.

색 하나, 후가공 하나를 정할 때도 기관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 고민이 쌓여야 한 권의 문화 백서 발간이 기록을 넘어 기억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과정

다른 백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에서 이어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관마다 다른백서가 어떤 이야기로 완성되는지 그 과정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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