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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기념 시정 백서, 연혁 편집의 기준

30년을 나누는 기준을 먼저 세웁니다

연혁이 한 줄로 이어지지 않을 때

시정 백서

30주년을 맞은 기관의 시정 백서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자료의 양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어떤 단위로 끊을지가 훨씬 어렵습니다.

연혁을 정리한다고 하면 보통 연도순을 떠올립니다. 1년차부터 30년차까지 순서대로 적어 내려가는 방식이죠. 그런데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지자체 정보통신 부서의 30주년 백서가 그랬습니다. 30년 동안 이어져 온 업무가 있는가 하면, 중간에 새로 생겨난 분야도 있었거든요. 연도순으로 늘어놓으면 어떤 분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고 어떤 분야는 후반부에만 나타납니다. 읽는 사람은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집니다.

연도가 아니라 분야로 끊었습니다

논의 끝에 정한 방식은 시간이 아니라 분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의 업무를 여덟 개 핵심 분야로 갈라, 각 분야가 어떻게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따로 서술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분야마다 완결된 이야기가 생깁니다. 통신망이 어떻게 깔렸는지, 행정 전산화가 어떤 단계를 밟았는지가 각각의 흐름으로 읽히죠. 중간에 생긴 분야도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잡습니다. 시작 시점이 다를 뿐 그 분야만의 완결된 경로가 있으니까요.

시정 백서에서 연혁 편집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관의 업무는 한 갈래로 흐르지 않습니다. 여러 갈래가 동시에 진행되고, 어떤 갈래는 도중에 합쳐지거나 갈라집니다. 이걸 한 줄로 펴려고 하면 무리가 생깁니다.

분야를 몇 개로 나눌지도 함께 정했습니다. 너무 잘게 쪼개면 각 분야의 분량이 얇아지고, 너무 크게 묶으면 성격이 다른 업무가 한 장에 섞입니다. 여덟이라는 숫자는 그 사이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나누는 기준을 정할 때는 지금의 조직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부서 구조는 30년 사이에 여러 번 바뀌었을 테니까요. 현재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면 그때 중요했던 일이 빠지기 쉽습니다.

다만 분야별로 나누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특정 시기에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일어난 변화가 흩어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보완 장치가 필요합니다.

30년을 한 장에 펼쳐 보입니다

그 보완이 앞부분의 타임라인 지면이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여덟 분야의 흐름을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은 지면을 두었습니다.

가로축은 시간이고 세로로는 분야가 놓입니다. 어느 시기에 어떤 분야가 시작됐는지, 특정 연도에 무슨 일이 겹쳤는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본문에서 흩어진 시간 감각을 여기서 회복하는 셈입니다.

이런 지면은 시정 백서 연혁 편집에서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합니다. 독자가 전체 지도를 먼저 보고 세부로 들어가면 훨씬 덜 헤매거든요. 30년처럼 긴 기간을 다룰수록 이 한 장의 유무가 크게 갈립니다.

지면 설계도 이 구조를 따라갔습니다. 여덟 갈래를 나란히 보여주려면 가로 방향에 여유가 있어야 해서, 판형을 220×280mm로 잡았습니다. A4보다 가로가 조금 넓은 비율이라 타임라인이나 흐름도를 배치하기 수월합니다.

본문 지면에는 그리드를 깔고, 제호와 쪽번호를 페이지 양 끝으로 밀어냈습니다. 가장자리가 정리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운데로 모입니다. 분야마다 내용이 달라도 지면의 인상은 일정하게 유지되고요.

기록으로 남지 않은 30년도 있습니다

시정 백서에 담기는 것은 대부분 문서로 남은 일입니다. 사업이 언제 시작됐고 예산이 얼마였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그런데 30년을 지나온 조직에는 문서에 없는 변화도 쌓입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무실 풍경이 바뀌고, 구성원이 세대를 넘어 교체됩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정 백서는 본문을 둘로 나눴습니다. 앞쪽은 분야별 업무의 흐름이고, 뒤쪽은 부서 문화의 변화입니다. 성격이 다른 두 이야기를 억지로 섞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준 것입니다.

같은 시간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

부서 문화를 다루면서 택한 방법은 인터뷰였습니다. 다만 대상을 나눴습니다. 오래 근무한 구성원과 최근에 합류한 구성원을 따로 만난 것입니다.

오래 있던 쪽에서는 지난 30년이 나옵니다. 초기의 열악한 환경, 하나씩 갖춰지던 과정, 지금 돌아보니 의미 있었던 순간들이요.

새로 온 쪽에서는 앞으로가 나옵니다. 지금 이 조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이어집니다.

같은 기관을 두고 나온 두 이야기가 나란히 놓이면,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이 문장보다 선명하게 전해집니다. 연혁의 마지막 장을 미래로 닫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면?

시정 백서, 지자체 백서, 기념 백서

기준을 정하는 데 시간을 씁니다

표지는 정보의 이동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캔버스에 물감을 뿌린 듯한 다채로운 색을 쓰고, 제목 글자 위로 그 효과가 겹치도록 배치했습니다. 여덟 갈래가 각자 흘러온 30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 셈입니다.

표지 양쪽에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책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읽던 자리에 끼워두는 책갈피로도 쓰입니다. 분야별로 나뉜 시정 백서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 펼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장치가 쓸모 있습니다. 제목 부분에는 청박 후가공을 더했습니다. 특정 영역에만 청색 필름을 입혀, 30주년이라는 시점이 표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이 백서는 착수부터 마무리까지 3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중 상당 부분이 무엇으로 나눌지 정하는 데 들어갔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일은 기준이 정해진 뒤에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덟 분야로 간다고 정해야 분야별로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두 파트로 나눈다고 정해야 인터뷰 대상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30주년처럼 긴 기간을 다루는 시정 백서라면 이 순서가 더 중요합니다. 다루는 시간이 길수록 뒤늦게 기준을 바꿀 때 되돌려야 할 분량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연혁 편집의 절반은 무엇을 쓸지가 아니라 무엇으로 나눌지에서 결정됩니다.

다른 백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에서 이어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관마다 다른 백서가 어떤 이야기로 완성되는지 그 과정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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