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원고 집필, 과제가 많을수록 구조가 먼저입니다
쓰기 전에 정해야 할 것들
백서 원고 집필에 구조가 필요한 이유
기관에서 넘어오는 자료는 대개 보고서 형태입니다. 과제마다 개요와 추진 목적, 시행 과정과 결과가 항목별로 정리되어 있죠. 결재를 위해 만들어진 문서라 형식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문서가 읽히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보고서는 확인하는 글이고 백서 원고는 읽는 글인데, 목적이 다르면 문장의 생김새도 달라져야 합니다.
경기주택도시공사의 혁신백서를 작업할 때 이 차이가 특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정리해야 할 과제가 100개가 넘었고 전체 분량은 500페이지 안팎이었거든요. 이 정도 규모에서는 과제 하나하나를 그때그때 다르게 쓸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같은 성격의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될 때 백서 원고를 어떻게 다루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보고서와 백서 원고는 다릅니다
보고서 원고를 그대로 옮기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분량이에요. 결재 문서에는 근거와 절차가 빠짐없이 들어가는데, 이걸 다 실으면 페이지 수가 감당이 안 됩니다. 다른 하나는 읽는 맛입니다. 보고서 문체는 정확하지만 건조해서, 비슷한 글이 계속 이어지면 어느 것도 눈에 남지 않아요.
차이는 하나 더 있습니다. 보고서는 그 사업을 이미 아는 사람이 읽는 문서라 생략된 맥락이 많아요. 반면 백서는 처음 보는 사람도 읽습니다. 그래서 원자료에는 없던 설명을 새로 넣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백서 원고는 다시 씁니다. 원자료에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되 문장은 새로 만드는 방식이에요. 이때 중요한 건 각 과제에서 무엇을 앞세울지 정하는 일입니다. 혁신과제라면 어떤 점이 이전과 달라졌는지가 핵심이니, 그 지점을 찾아 문장 앞쪽에 배치합니다. 배경 설명이 길게 이어지다 마지막에야 결론이 나오면 읽는 사람은 그 전에 넘겨버리거든요.
항목과 순서를 먼저 고정합니다
한두 건이라면 매번 다르게 써도 됩니다. 하지만 수십 건이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과제마다 담기는 항목이 제각각이면 독자는 매번 새로 적응해야 하고, 쓰는 쪽에서도 판단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백서 원고 작업에서는 규격을 먼저 정합니다. 과제 하나를 소개할 때 어떤 항목을 어떤 순서로 담을지 틀을 만들어두는 거예요. 이렇게 해두면 두 번째 과제부터는 그 틀에 내용을 채워 넣는 작업이 됩니다. 읽는 쪽에서도 세 번째쯤부터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고요. 규격이 있으면 기관에 요청할 자료도 명확해집니다. 어떤 항목이 필요한지 목록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 빠진 자료가 무엇인지도 금방 드러나거든요. 항목을 정할 때는 지나치게 세분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칸이 많아지면 대부분의 과제에서 비는 항목이 생기고, 그러면 지면이 들쭉날쭉해집니다.
분량도 규격의 일부입니다
항목만 정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과제마다 자료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오래 진행된 과제는 쓸 내용이 넘치고, 최근 시작한 과제는 몇 줄이 전부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그대로 두면 지면에서 드러납니다. 어떤 과제는 두 페이지가 빽빽하고 어떤 과제는 절반이 비게 되죠. 독자는 자연스럽게 뒤쪽 과제를 덜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과제 하나에 배정할 분량을 미리 정해둡니다. 자료가 넘치는 쪽은 핵심만 남기고 덜어내고, 부족한 쪽은 담당자에게 추가 질문을 보내 채웁니다. 분량 기준을 잡을 때는 가장 자료가 많은 과제와 가장 적은 과제를 함께 놓고 봅니다. 풍부한 쪽에 맞추면 빈약한 쪽이 허전해지고, 반대로 맞추면 풍부한 쪽이 잘려나가니까요. 규모가 특히 큰 과제 몇 건은 예외로 두기도 합니다. 다만 예외를 만들 때는 몇 건까지 허용할지 미리 정해둡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외가 늘어나 규격 자체가 무의미해지거든요.
분량 기준이 정해지면 원고를 쓰는 속도도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어디까지 쓰고 멈춰야 할지 알고 시작하니 매번 판단할 일이 줄어들거든요. 기관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청할 때도 어느 정도 분량으로 정리해달라고 안내할 수 있어, 넘어오는 원고의 양이 처음부터 고르게 맞춰집니다.
먼저 몇 건을 써보고 확정합니다
규격은 머릿속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항목과 분량을 정했다고 해도, 실제로 원고를 앉혀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오거든요. 어떤 항목은 대부분의 과제에서 쓸 내용이 없고, 어떤 항목은 정해둔 분량으로는 부족한 식이에요.
그래서 전체에 들어가기 전에 몇 건을 먼저 완성해봅니다. 열 건쯤 써보면 이 규격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요. 여기서 항목을 빼거나 순서를 바꾸고, 분량 기준도 조정합니다. 이 단계에서 기관 담당자와 함께 확인하면 더 좋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다를 수 있고, 내부에서만 아는 맥락이 빠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백서 원고 집필에서 초반에 시간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체를 다 쓴 뒤에 틀을 바꾸면 처음부터 다시 손봐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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